• 골롬반의 영성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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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갈빈(Edward Galvin, 1882년 11월 23일 아일랜드 코크 출생) 신부는 1909년 메이누스의 성 페트릭 신학대학에서 서품을 받고 첫 3년을 미국 브룩클린 교구의 성 라자리오 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 중이던 존 프레이져(John Fraser) 신부를 만나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고 그의 꿈이었던 중국선교를 자원하여 1912년 중국에 첫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4년 동안 빈센트회 선교사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중국선교에 더 많은 선교사들이 투신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 1916년 아일랜드 교회, 특히 메이누스의 성 페트릭 신학대학 지원을 얻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이 무렵, 메이누스 성 페트릭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존 블로 윅(John Blowick, 1888년 아일랜드 메이요 출생) 신부도 중국선교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906년 메이누스 성 페트릭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1913년에 서품을 받고 1914년 같은 대학의 신학교수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26세였고 역사적으로 최연소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 때인 1911년 존 프레이져 신부의 강연을 듣고 중국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두 신부는 1916년 9월 4일 드디어 더블린에서 만나게 되었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만남을 통해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를 창설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 무렵 아일랜드는 혁명과 독립을 위한 투쟁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정신이 분출되고 있었는데 두 사람 역시 이 정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골롬반회는 블로윅 신부의 신망과 갈빈 신부의 설득으로 1916년 10월 아일랜드 주교회의에서 선교를 위한 신학교와 선교회 설립 허가를 받고, 1918년 6월 29일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게 됩니다. 교황청 공식 인가를 받기 전부터 많은 신학생과 사제들이 모여 아일랜드의 달간 걸웨이에 신학교 부지도 마련하였습니다. 1918년 1월 첫 신학생 그룹이 들어왔고, 1920년 3월 20일에는 골롬반 선교사 첫 그룹 16명이 달간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갈빈 신부는 중국 골롬반회의 책임을 맡아 1920년에서 1925년까지 활동하였고, 1924년 중국의 한양 지목구장으로 임명, 1927년 같은 교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념에 대한 갈등과 대규모 홍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사업 등을 적극 펼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자 난민구제 사업에 앞장섰던 그는 1946년 한양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52년 공산주의 정권은 그를 불순한 인물로 여겨 중국에서 추방하였습니다. 미국을 거쳐 아일랜드로 돌아온 그는 달간에서 4년간 생활하다가 1956년 2월 23일 백혈병으로 선종하여 달간에 안장되었습니다.

존 블로윅 신부는 1919년 골롬반회 총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20년 중국으로 간 첫 번째 그룹과 동행하였던 그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1922년 골롬반 수녀회를 창설하였습니다.

1924년 총회에서 부총장 겸 아일랜드 지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31년 총회 후에 1947년까지 이 두 직책을 계속 수행하였으며 1947년 총회에서 다시 총장참사회의 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39년에는 달간 아일랜드 지부 본부와 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52년부터는 달간의 골롬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72세에 골롬반회가 활동하고 있는 주요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 6월 19일 평화롭게 생을 마치고 달간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