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롬반의 영성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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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립자
    • 특성 및 목적
  • 현대 선교의 과제
  • 골롬반 발자취
    • 한국진출부터 해방까지
    • 1960년대~1970년대
    • 1980년대~1990년대
  • 세계 선교지역 소개
  • 찾아오시는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1933년 6월 교황청으로부터 전라남도에서 일할 것을 제의받고 1933년 10월 29일 최초로 10명의 회원을 한국에 파견하였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회원들은 대구교구 신학교에서 한국말 공부를 마치고 전라남도로 파견되었다. 당시 그곳에는 6명의 한국인 신부가 3000 여명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골롬반회는 목포, 노안, 순천, 광주, 제주, 서귀포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다른 지역에서도 사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38년에는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그해 11월 2명의 회원이 춘천에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강원도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강원도에는 한국인 신부 11명이 9,000여명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39년 6명의 골롬반 신부가 합류하여 춘천, 원주, 홍천, 이천, 평강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41년 12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합세하면서 신부들을 모두 체포하여 골롬반 회원들 가운데 미국, 호주, 뉴질랜드 출신의 7명의 신부는 본국으로 송환시켰고, 아일랜드 신부들은 가택연금 시켰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목하던 3명의 골롬반 회원들은 첩보활동 및 불온사상 소지자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45년까지 사실상 선교 사업이 중단되다시피 하였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되었고 선교사들의 경우 1948년까지는 이전부터 한국에 거주하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입국허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한국에서 활동하는 회원 수가 감소하였습니다.
1949년 6명의 새로운 회원이 한국에 왔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면서 아시아 지부에 속해있던 한국 골롬반회가 한국지부로 독립하게 되었고 지 브라이언(Brian Geraghty) 신부가 초대 지부장에 선임되었고 현 동소문동 골롬반 본부 부지를 매입하였습니다.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당시 38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쟁 중에 7명의 골롬반 회원이 사망하고 2명은 포로가 되어 4년 동안 북한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습니다. 전쟁 직후 기아와 질병이 가장 큰 문제였으므로 교회는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주는 구호센터가 되었는데 골롬반 회원이 사목하던 본당들도 이러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이때 한국의 골롬반 회원 수도 급격히 증가하여 대략 36명의 신부들이 강원도에서 사목을 시작했으며 1955년 구 토마(Thomas Quinlan) 신부가 춘천 대목구의 첫 주교로 서임되었습니다.

전라남도의 경우 45명의 골롬반 회원들이 부임하여 1953년 원 요한(Sean Savage)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여 전국 본당에 뿌리 내리게 하였습니다.

1957년 현 헤롤드(Harold Henry) 신부가 광주 대교구의 주교로 서품 되었으며 임 피제(P.J. McGlinchey) 신부는 1954년 제주의 가난 퇴치를 위하여 목축업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에는 돈암동과 왕십리에 처음으로 2개의 본당을 설립하였습니다.